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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파 과민증, IT의 빛과 그림자
2016년 12월, 영국 옥스퍼드셔에 살던 15살 소녀 제니 프라이가 극심한 알레르기 증상을 견디다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벌어졌다. 제니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한 것은 다름 아닌 와이파이(WiFi) 전파였다.
제니의 병명은 전자파 과민증, 일명 EHS (ElectroHyperSensitivity)라 불리는 병으로, 발생 원인은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와이파이 등 전자파로 인해 두통과 두근거림 및 극심한 스트레스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세상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부터 와이파이를 비롯한 각종 전파에 노출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의 초고속 발전 덕분인데, IT 기술의 빠른 성장이 누군가에는 WLF병을 고치고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빛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목숨을 앗아가는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최초 보고된 전자파 과민증(ElectroHyperSensitivity)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꾸준히 환자가 늘고 있다. 프랑스에 사는 한 50대 여성과 그녀의 딸은 전자파 과민증으로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포기한 채, 동굴에 숨어 지낸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스위스 취리히에는 이처럼 첨단 기술이 주는 피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유럽 최초 ‘스마트폰 사용 금지 아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위스의 건강 관련 재단이 기획한 이 아파트에는 전자파 과민증 외에도 샴푸나 세제, 향수 등의 냄새만 맡아도 구토나 발열, 두드러기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화학 물질 과민증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아파트 입구에는 ‘블랙 리스트’가 붙어 있는데, 향수나 휴대 전화, 햄버거 등 인스턴트 식품 등이 포함돼 있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전자파 과민증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만, 오염된 공기나 조명, 소음 등 다른 원인으로도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질병(disease)이 아닌 증상(symtom)으로 보고 있EK.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다르다.
영국 서머셋 지역 보건 의사인 앤드류 트레시더는 “영국 정부와 WHO 측은 아직 이 질병을 심리적 원인 때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더욱 고통에 시달린다”면서 “이 증상과 관련한 과학적인 조사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 스마트폰 등 IT기기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성장발육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살 충동이나 학교 폭력 등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다.
IT는 지금 이 시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앉은 자리에서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을 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모두 IT의 공(功)임은 사실이다.
현대 사회는 IT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각국 IT기업 및 전문가들이 ‘IT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개선 방안을 찾는 일에도 힘 써야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글 작성: 진단검사의학과전문의 최병문]